소나무 숲에서 절이 솟아낫다는 전설을 간직한 송림사(松林寺). 송림사는 나지막한 돌담이 둘러싸여 아담하고 옛스러운 멋을 풍기는 절 집과 탑, 석등 등이 아름드리 정원수와 잘 어우러져 마치 작은 공원의 안락함이 느껴진다.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띠는 것이 크고 우뚝하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를 뽐내는 오층전탑(五層塼塔)이 절의 가치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인근에 있는 부인사가 잃어버린 영광의 흔적이라면 송림사는 오로지 탑 하나로 현존하는 영광의 흔적이다. 고려 현종 때 거란과 여진을 퇴치하기 위해 처음으로 대장경 각판사업을 진행한 것이 부인사에 보관되었던 초조고려대장경(初雕高麗大藏經)인데, 몽고의 2차 침략 때 몽고군이 부인사로 들이닥쳐 불태워 버렸다. 이어 송림사에 들이닥친 몽고군의 만행으로 모든 전각들이 불탔지만, 전탑만은 험한 수난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오롯이 그 모습을 오늘날까지 지켜온 것이다. 신라 진흥왕 때 진(陳)의 사신 유사(劉使)가 중국 유학승인 명관대사(明觀大師)와 함께 신라에 오면서 불경 2,700권과 불사리를 이운해 왔다. 이때 불경과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절로 그 가운데 일부를 호국안민(護國安民)을 위한 기원보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흔히들 한국은 석탑의 나라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탑이 많다. 그러나 순수한 전탑은 몇 기 되지 않아 탑의 상륜부 까지 오롯이 갖추고 있는 송림사 5층전탑은 미술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희소가치 또한 높다. 탑의 겉모양뿐만 아니라 이 탑에서 나온 유물 역시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데, 1959년 해체수리를 할 때 쏟아져 나온 사리엄구와 함께 여러가지 유물들은 양과 질 모두를 만족시켰다. 그 중에서도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의 화려한 아름다움과 정교함은 어떤 표현으로도 모자랄 지경이어서 대구박물관의 입장권 전면에 새겨지기도 했다. 또 미국 매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대여되어 한국의 문화와 미술품을 알리는 메신저로서 유물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관람 포인트
1. 신라 진흥왕 때 진(陳)나라 사신이 명관대사(明觀大師)와 함께 불서(佛書) 2,700권과 불사리(佛舍利)를 가져와 봉안한 송림사 5층전탑은 보물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탑은 높이 16.13m, 긴단 폭 7.3m의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추정된다. 쉽게 볼 수 있는 석탑보다 크고 재질도 달라 사방을 돌면서 천천히 살펴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2. 송림사 대웅전의 편액은 조선 숙종대왕의 친필이며, 대웅전안에는 높이 3m의 삼존상이 있다. 삼존상은 향나무로 만들어진 불상으로 국내에서 보기 드문 큰 불상이다.
3. 송림사 명부전은 전국에서도 규모가 제일 크며, 내외부 장엄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명부전의 조선 후기 석조 삼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시왕(十王)상, 판관상 등 명부전의 다른 제상(諸像)도 조형성이 돋보이고 미술사적 자료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전설 |
옛날 어느 추운 겨울날, 어느 부자집에 초상이 났다. 장사 전날밤 상주의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 “내 시키는 대로 한다면 너의 집안은 대대로 복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화가 미칠 것이다. 장례를 끝마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물건이나 음식을 주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조상이 현몽하여 일러준 것으로 믿은 상주는 조상객이나 인부들에게도 음식을 못 먹게 했다. 인부들은 배가 고팠으나 일을 마치고 나면 품삯을 두둑히 주겠다는 상주의 말을 듣고, 참고 일했으며, 마을 사람들도 추위 속에서 장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장례를 치루는 곳을 알고 찾아온 걸인들이 음식을 좀 달라고 졸라도 상주는 떡 한쪽 주지 않았다. 오히려 장례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음식을 챙겨 집으로 내려 보냈다. 그러나 인부를 시켜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걱정이 되어, 자신이 직접 뒤쫓아 가기로 하고 남아 있는 인부들에게 신신 당부를 했다. “절대로 장례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게. 품삯 은 두 곱으로 쳐 주겠네”, “염려마십시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불살라 버릴 테니까요” 다짐을 받은 상주는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다. 산에는 인부들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일을 마치고 나자, 짚푸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한곳에 쌓아 태우기 시작했다. 이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거지 아이가 모닥불 옆으로 다가와 떨며 애원했다. “저는, 오늘밤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제발, 그 가마니 한 장만 주십시오” 측은한 마음이 든 인부들은 상의 끝에 헌 사마니 한 장을 줘 보내고 연장을 챙겨 막 내려오려는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거지 아이가 가고 있던 그 자리에는 웅장한 절이 생기고, 가마니는 그 절의 대웅전에 걸려 있었다. 그 후, 과연 그 상주집안은 점점 몰락하고, 대도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거지 아이에게 온정을 베풀어 주었던 인부들은 점점 살림이 늘고 자손도 번창 하였으며, 절의 이름은 소나무 숲에서 생긴 절이라 하여 ‘송림사’라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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